


금융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삶을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부채의 벼랑 끝에서 생명을 지키는 길, 빚 때문에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 금융이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장치가 된다면, 우리는 금융의 존재 이유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과 과도한 채무는 단순히 통장 잔액의 문제가 아니다. 사업 실패와 실직, 소득 감소가 연체로 이어지고, 연체가 신용 하락과 고금리·추심으로 연결되면서 한 사람의 일자리와 가정, 인간관계와 삶의 희망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에게 부채는 더욱 절박하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까지 실패한 것은 아니다. 한 번의 실패가 평생의 금융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은행과 카드사 등 금융기관은 물론 사기업이다. 그러나 금융은 국가의 인허가와 감독 아래 국민의 예금과 신용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산업이다.
금융기관은 일반 기업보다 훨씬 무거운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금융기관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이익의 끝에 국민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금융의 공공성이란 돈을 빌려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사람이 다시 경제활동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첫째, 금융기관의 연체 관리 철학부터 바뀌어야 한다
연체자를 무조건 ‘도덕적 해이’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회수율만 높이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실직이나 폐업, 경기침체 등으로 일시적인 어려움에 빠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낙인이 아니라 재기의 기회다.
상환유예, 장기분할상환, 금리조정, 채무조정 등을 조기에 연결해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복귀하도록 돕는 것이 금융기관 자신에게도 장기적으로 이익이다.
둘째, ‘신용이 낮을수록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역설’을 완화해야 한다
소득이 부족하고 신용이 낮다는 이유로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고, 높은 이자가 다시 연체 가능성을 키우는 악순환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기존 신용점수뿐 아니라 실제 소득 흐름과 상환능력 등을 보다 정교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한다.
금융은 어려운 사람에게 더 높은 사다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올라설 수 있는 사다리를 놓아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셋째, 추심에도 인간의 존엄이라는 선이 있어야 한다
채권자의 정당한 권리는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채권 회수라는 명분이 채무자의 인간다운 생활과 존엄을 훼손하는 수준까지 허용될 수는 없다.
과도한 독촉과 생계를 위협하는 추심을 억제하고, 채무자대리인과 법률지원 제도를 보다 쉽게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지키면서 빚을 갚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채권 회수의 길이다.
넷째, 가장 중요한 것은 ‘연체 후 추심’에서 ‘연체 전 구조’로 금융정책의 중심을 이동하는 것이다
사람이 물에 빠진 뒤 구조대를 보내는 것보다 물에 빠지기 직전에 손을 잡아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일정 기간 이상 연체가 발생하거나 채무상환 부담이 위험 수준에 이르면 금융기관이 먼저 공공·전문 상담기관과 연결하고, 신용회복·채무조정·개인회생·복지지원·재취업·재창업 지원으로 이어지는 ‘회생 패스트트랙’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실패를 개인의 인생 실패로 연결시키지 않는 사회적 장치가 중요하다. 사업 하나가 무너지면서 대표자의 신용과 가족의 생계까지 함께 무너지는 구조라면 누가 다시 도전하겠는가.
우리 사회는 성공한 기업가에게는 박수를 보내면서 실패한 기업가에게는 너무 쉽게 등을 돌려왔다. 그러나 수많은 성공의 뒤에는 실패와 재도전이 있었다.
실패할 자유와 다시 일어설 기회를 보장하는 금융이 있어야 혁신도, 창업도, 경제의 역동성도 살아난다
물론 빚을 무조건 탕감해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과의 형평성, 금융질서와 도덕적 해이 문제 역시 중요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탕감이 아니라 상환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상환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 주는 정교한 재기 금융이다.
금융기관의 진정한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이자를 거두었느냐만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위기에 처한 고객을 얼마나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복귀시켰는지도 금융의 중요한 성과가 되어야 한다.
한 사람을 파산시키고 채권 일부를 회수하는 금융보다, 그 사람이 다시 일어나 일하고 사업하며 세금을 내고 빚을 갚도록 만드는 금융이 국가경제에도 훨씬 큰 자산이다.
돈은 다시 벌 수 있다. 기업도 다시 세울 수 있다. 신용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잃은 생명은 어떤 금융제도와 어떤 돈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금융의 공공적 기능을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가장 절박한 이유다.
금융은 사람 위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돈 때문에 사람이 무너지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무너질 때 금융이 손을 내미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부채의 벼랑 끝에 선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독촉장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 희망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금융이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공공적 기능이다.